13장: 흑백사진

레딩에서 해안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졸음이 쏟아졌다. 바다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았고, 프리웨이에서 내리기에도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강렬한 태양에 차를 세우고, 눈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잠을 깨려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계속 밀려오는 잠에 이번에는 음악을 강렬한 비트가 있는 플레이 리스트로 바꾸었다. 한 노래가 귀에 들어와 반복해서 돌리는 과정에서 잠이 확 깨었다. 안심이 되고, 조금은 살아닌 거 같다. 다음 여행 때는 꼭 잠을 충분히 자고, 이동경로가 지루하지 않게 질 조정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거리를 보니 상당히 많이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만 더 가면 바다가 나올 듯하다. 해안선 도로로 들어서는 순간 하늘에서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1번 도로로 진입하면서 도로 오른 편으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 같은 회색구름과 차 밖으로 강하게 부딪히는 거센바람 그리고 그 와중에 해변에서 친구들과 비를 맞고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순간 카메라에 잡힌 모습은 어린시절 흑백티비로 보던 블랙앤 화이트의 장면이었다. 고전적이면서 운치가 스며있었다. 바람이 하도 세게 불어서 모자를 붙잡지 않으면 날아가 버리고, 세워놓은 카메라 스탠드는 굴러 돌아다니기 일수였다. 가지고 나온 우산은 완전히 뒤로 꺽여져 막는 비보다 맞는 비가 더 많았다. 아무래도 더 나아가기는 무리가 있어보여 차로 돌아와 차속에서 빗속의 해변을 감상했다. 커피를 잘 안 마시지만, 지금 이순간에서 따뜻한 커피향이 생각이 났다.

캘리포니아 최북단 크레슨트 시티로 들어섰다. 오레곤 주 경계까지 몇 마일 남지 않은 곳이다. 계속 흩뿌리는 비로 윈도우 와이퍼는 쉬지 않고 돌아갔고,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은 모두 흑백사진이었다. 차 유리에 서린 허연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히터를 틀었다. 몸이 따뜻해 져서 좋긴한데, 습기제거가 더디였다. 하는 수 없이 창문을 약간 열고, 에어콘모드로 바꾸었다. 습기는 금방제거 되었다. 쌀쌀하다 못해 추운느낌이 들어 잠깐 쉬어가야 할 듯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가 흩뿌리는 흑백사진 속의 해안의 모습은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비바람이 잦아 들자 국경 쪽으로 향했다. 시간 상 거리 상 그리 멀지 않은 곳 이지만, 오레곤 주경계를 넘어서 나온 해안의 모습은 비를 맞아 푸른 푸른한 싱그러움이 담겨있는 경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