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미터법

아직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났다. 많은 준비가 필요치 않아 샤워 후 호텔 식당에서 과일과, 빵 그리고 오렌지 쥬스를 챙기고 국경으로 향했다. 국경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직도 캄캄한 새벽이었고, 이른 출발에 국경에서는 기다리는 줄이 거의 없었다. 두어대의 차가 지나고 내 차례가 되어 준비한 여권을 제출했다. "캐나다에는 처음 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라고 대답하니, 좋은 시간이 되라고 인사하며 여권을 돌려 주었다. 계속 해변 도로를 따라 달리자 동이 트기 시작했다. 잠시 길 옆에 차를 세워두고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일출을 감상했다. 같은 해여도 다른 나라에서 맞이하는 해라 느낌이 달랐다. 왠지 이민온 후 새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계속 올라가는데, 뱅쿠버까지 50 킬로미터라는 표지를 50마일로 보고 가다가 왜 이리 도시가 빨리 나오지 라는 생각을 하는데, 캐나다는 미터법을 쓰는 나라라는 걸 잊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미터법 방식의 표시를 보게 되었다. 뱅쿠버에서 브런치를 먹으러 푸드코트를 갖다가, 물한잔 달라고 하는데, 수도물을 컵에 담아 주는 걸 보고 놀라 생수를 사 먹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돌아 다니는 게 특이 했는데, 키가 굉장히 큰 한쌍의 남녀가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그 둘을 에워싸고 있었다. 두 남녀의 머리가 주위 사람들 키 위로 보일 정도라 남자는 거의 2미터 가까이 여자는 185 센티는 충분히 되어 보였다. 키 뿐아니라 외모도 남자는 훈남, 여자는 금발의 미녀였다. 이 지역에서는 유명한 사람같았다.

뱅쿠버 북쪽의 흔들 다리가 유명하다 하여, 표를 구해서 들어갔다. 흔들 다리를 지나가는데, 별거 아니겠지 하는데, 몸이 중심이 잡히지 않아 가장자리 손잡이를 꼭 잡고 가면서, 사진 찍을 때는 조심스럽게 손을 놓고 찍었다. 오래전 인디언들이 살던 마을에 만들어 놓은 다리 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광을 위해 관리를 잘해 놓은 듯 하다. 곳곳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 부터의 역사적 기록이 사진과 함께 붙어 있다. 미국과 이웃도시라 문화도 비슷하고, 경제 수준도 그렇고 무엇보다 인종 구조가 비슷해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은 덜 했는데, 기념품점에서 캐나다달러와 미국달러의 환율차이에서 비로소 캐나다에 온 걸 실감할 수 있었다.

휘슬러까지 올라갔다. 겨울이면 눈으로 덮힌 산을 보았을텐데, 가을이라 알록달록 단풍이 이쁘게 물들어 있었다. 예전에 올림픽을 했던 곳이라 오륜기 조형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고, 올림픽 당시 선수촌이었을 호텔들이 곳곳에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한 백인 관광객이 다가와 말을 걸으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자기도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한다. 굉장히 여유가 있으면서 친절했다. 같은 곳 사람을 봐서 더 반가왔다고 한다. 산위로 리프트가 운행이 되고 있었는데, 겨울에 오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눈의 전경이 멋드러 질 것 같다. 주위의 카페에서 디저트와 음료를 먹으면서 바라보는 가을 전경은 이국적인 낭만이 있었다.